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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에 걸려 약을 안 먹으면 잠을 못 잤는데 어젯밤엔 정말 꿀잠을 잤어요. 1년 만입니다.”
12일 인천 강화군 송해면 당산리에서 만난 안미희(38)씨는 환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이 마을은 북한과 불과 1.8㎞ 떨어진 곳이다. 작년 7월 이후 북한유니온 주식
이 확성기를 설치하고 매일 ‘끼익끼익’ 하는 쇠 긁는 소리와 사이렌 소리 등을 내면서 주민들이 소음 공해에 시달렸다. 소음은 80데시벨(dB) 안팎으로 지하철이 달리는 소리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늑대 울음소리 같은 기괴한 소리도 울려 퍼졌다. 조용한 밤에는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전날 우리 군이 북한을 향해 틀었던 확성기 방송을 멈추자 상따
늘 들리던 북한의 대남 방송 소리가 거의 사라졌다. 안씨는 “어젯밤에는 북한 가요 소리가 살짝 들렸는데 개구리 우는 소리에 묻혔다”며 “창문을 활짝 열었는데도 잠자는 데 전혀 지장이 없었다”고 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전날 군에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지하라고 지시했다. 북한과 사전 협의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대선 때 남북 피앤텔 주식
간 긴장 완화를 공약했다. 대북 확성기 방송은 북한의 오물 풍선 도발과 단거리 미사일 발사 등에 대응해 작년 6월 시작했다. 북한은 이에 맞서 대남 방송을 틀었다.
“조용한 아침이 낯설었어요. 지난 1년간 고통이 생각나더라고요.”
초등학생인 안씨의 아들과 딸은 일주일에 2~3번 5㎞ 떨어진 친척 집으로 ‘잠 동냥’을 다녔이챗
다고 한다. “아이들한테 어린이날 선물로 뭘 받고 싶냐고 물었는데 집에서 편하게 자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싶었어요.”
그는 지난해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장에 출석해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렸다. “제발 소음 방송이 멈추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었다.
이날 당산리 마을은 평화로웠다. 한 달 전 진양산업 주식
방문했을 때와 달랐다. ‘주민 고통 심각하다! 피해 대책 즉각 시행하라’고 쓴 현수막만 바람에 흔들렸다. 논두렁에서 잠시 쉬고 있던 김응서(64)씨는 “그동안 난청에 걸려 힘들었는데 이제 내가 알던 조용하고 평범한 농촌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당산리 마을회관은 모처럼 창문을 활짝 열었다. 주민들은 “1년 만에 창문 열고 청소하고 있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 대표 시절인 작년 10월 이 마을회관에서 피해 주민들을 만났다. 당시 이 대통령은 “정치와 국정이 잘못돼 여러분이 직접 피해를 입는 상황이 됐다”고 했다.
안효철 당산리 이장은 “눈앞이 뿌옇게 보여 대학 병원에 가보니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하더라”며 “소음을 조금이라도 막아보려고 창문에 두꺼운 스티로폼을 덧댔는데도 소용이 없었다”고 했다. 당시 아이를 가진 신혼부부가 소음 때문에 마을을 떠나기도 했다. “매일 하나씩 알을 낳던 닭이 알을 낳지 않는다” “사슴이 새끼를 사산했다”는 호소도 잇따랐다고 한다. 인천시는 지난해 피해 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방음창 설치 비용을 지원하기도 했다.
당산리에서 펜션을 운영하는 이만호씨는 “예전엔 한 달에 12팀 넘게 묵었는데 북한이 소음 방송을 튼 이후로는 손님이 딱 끊겼다”며 “앞으로 관광객이 많이 오면 좋겠다”고 했다.
주민들은 1년 만에 되찾은 평화에 반가워하면서도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채갑숙(69)씨는 “북한이 또 언제 소음 방송을 틀지 모른다”며 “더 두고 봐야 한다”고 했다. 유재희(80)씨는 “마을이 항상 이렇게 조용하면 좋겠다”고 했다.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 조치에 북한이 화답했다고 속단해선 안된다” “북한의 의미 있는 변화를 끌어내기엔 한계가 있다”고 했다. 시드니 사일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 고문은 “현재 한반도가 불안정한 가장 큰 원인은 북한이 핵무기 보유량을 늘리고 러시아와 전략적 협력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이번 조치가 한반도 긴장 완화나 평화 진전에 의미 있는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에번스 리비어 전 국무부 동아태담당 수석부차관보는 “북한은 이미 중국과 러시아로부터 제재 회피 등 다양한 혜택을 누리고 있다”며 “한국이 (북한의 변화를 유도할) 큰 카드를 갖고 있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전날 국민의힘은 “북한 정권은 도발 중단 약속조차 없는데 확성기를 알아서 끈 것은 스스로 안보 손발을 묶는 것”이라고 했다.
박용철 강화군수는 “언제든 상황이 돌변할 수 있는 만큼 방음창 설치 등 주민 지원 사업은 계속할 계획”이라고 했다.
전날 납북자가족모임이 경기 파주 임진각에서 대북 전단을 날려 보내겠다고 예고하면서 파주 주민들은 불안해하고 있다. 북한과 맞닿은 파주 지역 주민들도 1년 가까이 소음 피해에 시달렸다. 이완배 파주 통일촌 이장은 “대북 전단이 또 북한을 자극할 가능성이 있다”며 “임진각에서 맞불 집회를 열고 전단 살포를 저지하겠다”고 했다.